제가 중1때 일입니다.
솔직히 지금도 그 일이 환상이었는지 뭐였는지 잘 구별이 가지 않습니다만, 당시엔 정말 놀랐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중1때 일본어부에 들었었는데, 어느 봄날 일본어부 전체가 토요일 현충원으로 봉사활동을 가기로 했었습니다. 토요일에 있는 수업을 전부 빠진다는 특례에 좋아하며 버스를 타고 현충원으로 향했습니다.
현충원에 도착해서 저희는 각자 가져온 마른수건으로 비석 하나하나를 닦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거, 수업 빼먹는다고 좋아했더니 생각보다 꽤나 힘든 작업이었습니다. 봄날 화창한 햇빛도 거침없이 내려쬐고, 허리도 뻐근하게 아파오기 시작하자 저는 잠시 묘비 단락 옆길에 있는 벤치에 앉아 쉬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화창하니 좋던 날씨에 갑자기 구름이 살짝 끼기 시작하는 겁니다. 햇빛 때문에 땀이 삐질 났던 참이라 오히려 좋게 여겼습니다. 그렇게 몇 분을 앉아 맞은편 묘비 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시야에 무언가가 잡혔습니다.
제가 바라보고 있던 묘비에 무언가가 앉아있는데, 뭐랄까 설명하기가 쉽지 않군요. 제가 상상해낸 환상을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희끄무레한 연기 같은 것이 사람형상을 하고 묘비위에 앉아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옆을 보면서 묘비에 비스듬하게 앉아있는 형상이었는데 갑자기 저를 휙 돌아보다니 벌떡 일어서는 겁니다. 그러더니 저를 향해 달려오는가 싶더니 휙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불과 몇 초 동안에 일어난 일이기에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하고 제 눈을 믿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 사이에 다시 구름이 걷히고 햇빛이 비치기 시작했습니다. 그 무언가가 앉아있던 묘비 위에도 말이죠. 순간 든 기분은 묘하게도 '무섭다'나 '신기하다'가 아닌, 뭐랄까, 굉장히 슬프고 안타까운 느낌이었습니다. 아까 그 묘비를 따뜻하게 내려쬐어 주는 햇빛을 보고 있자니 뭔가 마음에 응어리가 진 듯한, 울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그 이상한 경험을 겪고 저는 아무 탈 없이 현충원 묘비에 묻힌 이들에 대한 경례와 묵념을 하고선 다시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친구들에게도 이 경험을 말해주었는데, 다들 거짓말~ 이라면서 믿질 않더군요. 뭐 솔직히 저도 제가 정말 이것을 본건지 아닌 건지 잘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그때의 기분만큼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안타까움이랄까요, 무서운 느낌은 들지 않았습니다.
그때부터 현충일 날이면 묘비를 정말 열심히, 정성들여 닦습니다. 그게 제가 그 분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이 아닐까-하면서 말이죠. 그리고 묘비를 하나하나 볼 때마다 그 때의 그 느낌이 되살아납니다. 부디 그 분들이 편안하게 저세상에서 잠들어계시기를 빕니다.
[투고] 뚜뚭…님
악당
천재
Jennifer
세일러문
일본어부라길래
미안
부리딩
우리처음만난날
현충일이면 묘비를 정성스레 닦고계실,,뚜뚭...님이라...;;ㅋㅋ
붉은달
그런데 희뿌연게 나한테로 달려오면 완전 무서웠을거 같아요.
짐
이번 것은 좀 공포라기보다는 짠하네요ㅎ
saru777
아... 근데 현충일이 일요일이라는게 더 슬프다눈...ㅠㅠ
한국무용
ㄹㅇ
이건 공포가 아닙니다.
잇힝
훈훈한 이야기인 듯..
o.o
집행인
500원
오스왈드
순국선열들에게 묵념
그리고 그들을 팔아 정치하려 한 어떤 사람들에게는 ...
성산이공
류크
유류
그런데 순간 '일본어부'를 '일본 어부'인지 알고 중1인데 일본의 어부?? 어?? 이러고 있었....
멀미
그래서 중1때 일본에서 살았는데 일본에 있는 어부가 얘기를 해줬는지 알고 그런데 갑자기 일본에 사는데 현충원을가고.. 일본 어부들이 현충원으로 왜 봉사활동을 가지 ... 라는 생각까지...ㅋㅋ
세일러문
아악
나도 일본 어부로 보고 저사람 일본인인줄
알아써!ㅋㅋㅋㅋㅋㅋㅋ
일본어 부 였구나 ㅋㅋㅋㅋ
햄짱
진유온
따뜻
VKRKO
관심 있으신 분은 놀러와주셔요 :)
http://vkepitaph.tistory.com
HounDog
모모
새콤한 응가
새콤한 응가
비형여자
망자에게는 자신의 비석을 닦아주는 것이 고맙기도 했을텐데 막 달려온건 무엇때문이었을까요,,?
아무튼 투고자님의 마음가짐에 한가지 배워갑니다^^
은양
한참 뭔말이야 하면서 생각했다는...ㅋㅋ
그라탕
무서버
작은절망
전 언젠가부터 현충일을 그냥 휴일로만 생각했네요...
이번 기회를 빌어 조금이나마...
gks0726
rhena
공포소녀
Triump
전 경고 했습니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오한이 돕니다.
군대 조심하세요.
유리
햄짱
희끄므레한 연기의 정체는????
123123
야 내비석도 딱아줘잉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하면서 달려오는걸 상상 ;
온누리
5.18국립묘지
(대학은 동대문구 회기동을 거쳐 ㅠㅠ 지금은 강원도 춘천시에 살고있구요 ㅠㅠ 엄청 멀리왔졍;;철학관가서 사주보면 꼭 역마살있다고 하더라구요 -_- )
중학교때는 클럽활동이라고해서 2,4주 토요일엔 부활동을 했습니다.
역사탐방부였던가 그랬을꺼에요 너무 오래전이라..10년도 조금넘은 일인데..
5,18국립묘지에 갔었죠. 5월달이였을꺼에요.
묘지로 들어가는 큰 문이 있었고 나올때도 그 문으로 나왔었습니다.
나랑 같은 반이고 부원이었던 친구두명과
선생님의 설명과 말씀을 듣고 김밥같은걸 먹었던것 같아요 그리고 나서 나오는데..
애기울음 소리가 3-4초정도 머릿속에서 울리지만 강한 소리??비슷한게 들리는거에요..
탁트인곳인데 울린다는거 자체가 좀 이상하기도하고 실내도 아닌데 말이죠.
뭐라고 말로 설명하기 딱히 그러네요..
순간적으로 나만들었나해서 옆친구 얼굴을 보는데 옆친구도 절처다보고 있더라구요;;
너도 들었어? 물었더니.. 들었다고 세명다 같이 들었는데 온몸에 소름이 쫙-돋아서 집에 돌아갔던 기억이
있네요. 집에가서 엄마한테 말씀드렸더니 엄마가 소금을 가져오시면서 뭐라고 하시면서 뿌려주시더라구
요, 이모들한테 다 커서 듣게되었지만 외할머니댁 뒤뜰엔 엄마가 절대 안가신다고 하더군요.. 어째서 가지
않으시냐고 여쭈어 봤더니 누가 움막짓고 산다고 자꾸 언니가 그렇대더라 라고 말씀을 하셨어요.
아마도 외할머니댁 뒤뜰에 거주하시는 터줏대감님일지도;;ㅋ
방학때 놀러가서 친척들과 숨바꼭질하고 놀 땐 왠지 뒤뜰가면 여름에도 한기가 돌고 쌔~한 느낌이 났던 기
억이있는데 엄마가 감이 좋으신것 같아여;
그래서 소금 뿌리면서 뭔가 쫓아(?)내시려고 한건지도 모르구요.
생각나서 댓글달다보니 뜬금없이 엄마보고싶네요 엄뫄아ㅏㅏㅏㅏ ㅠㅠ
준여니
으음
상당히 뜬금없지 않나요....
동감
준여니
묵념...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