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두리 없는 거울> 계단의 하나코 - 4

* 본 연재는 출판사 아르테의 협찬으로 진행됩니다.

계단의 하나코 - 프롤로그
계단의 하나코 - 1
계단의 하나코 - 2
계단의 하나코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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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마음에 담아뒀니?”

도서관 쪽으로 걸어가면서 물어보니 지사코는 아기 다람쥐같은 커다란 눈동자를 굴리며 아무 말 없이 아이카와의 얼굴 을 바라봤다. 아이카와가 다시 말을 걸었다.

“그것 때문에 살이 빠진 거야?”
“아아.”

멍한 말투로 지사코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이카와가 말했다.

“물론 교생실습을 한 반 아이한테 발생한 일이니 충격이 컸을 거야. 하지만 네가 그렇게까지 고민할 필요는 없어. 책임에 대해선 학교나 내가 진지하게 생각해야겠지.”

그 말을 듣고 한참을 있다가 지사코가 혼잣말처럼 대답했다.

“실은요……. 저랑 사이가 좋았어요. 선배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요.”
“응?”
“사유리랑 저 말이에요.”

지사코가 아이카와를 똑바로 응시했다. 깜짝 놀랐지만 곧바로 평정심을 되찾았다. 의외였다. 일반적으로 교생은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다. 하지만 사유리는 굳이 말하자면 관심이 있어도 다가가면 안 되는 부류의 아이라고 생각했다. 반 아이들과 지사코가 사이좋게 어울리는 모습을 사유리가 멀찍이서 부럽게 쳐다본 기억밖에 없다.

“사이가 좋았다니 어느 정도로?”
“방과 후에 그 아이 혼자 남아서 청소하는 걸 우연히 보게 됐어요. 마음에 걸려 말을 걸었죠. ……매일 혼자서 청소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반쯤 열린 입술이 순식간에 바싹 말라버렸다. 지사코가 말을 이었다.

“다들 청소를 땡땡이치고 집에 갔지만 청소를 안 하면 혼나니까 자기는 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그 아이는 정말로 책임감 이 강했어요.”

크림색 복도에 지사코의 희미한 그림자가 비쳤다. 아이카와보다 한 걸음 앞에서 걸어가니 표정을 볼 수가 없다.

“방과 후에 혼자 청소하는 모습을 몇 번인가 봤고, 그때마다 조금씩 이야기를 하게 됐어요. 반에서는 웃는 얼굴을 거의 보여주지 않았지만 사실 사유리는 잘 웃는 아이였어요. 함께 어울려서 청소도 하고 책을 빌려주기도 하면서 우리는 정말 많은 얘기를 했지요.”
“얘기라니, 무슨 얘기?”

목소리에 긴장감이 드러나지 않도록 애쓰긴 했지만 티가 났는지 어떤지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없어 불안했다.

“친구들이랑 사이가 좋지 못해 외롭단 이야기도 했고…….”

지사코가 대답한다.

“그리고 그런 얘기를 작년부터 아이카와 선생님이 들어준다는 얘기도 했어요. 엄마한테 말하지 못한 얘기를 선생님한테 는 말할 수 있다고요. 학급 회의에서 아이들이랑 토론을 했다며 어찌나 기뻐하던지.”

뒷모습을 보인 채 지사코가 막다른 곳에 있는 도서관을 향해 가볍게 발걸음을 옮기는 동안 아이카와는 시간을 들여 중 간에 있는 교실 문 하나하나를 묵묵히 확인했다.

“그 아이는 선배를 정말로 좋아해서 마음의 안식처로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지사코가 그제야 아이카와를 돌아봤다. 엷은 웃음을 띤 채.

“그 얘길 듣고 선배 같은 교사가 되자고 마음먹었죠.”
“어.”

짧게 대답했다. 지사코가 그 대답을 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도서관 문 앞에서 반소매 셔츠에서 나온 하얀 팔로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그날 사유리는 청소를 하며 어깨를 감싸고 있었어요. 마치 자신을 보호하듯이 말이에요.”

입을 다물었지만 목 안에서 공기가 휙휙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진다. 지사코를 응시했다.

“그거 혹시.”
“제가 보여달라고 했어요. 사유리는 보여주길 거부했지만 뭔가 이상해서 걱정됐지요. 옷을 젖혔더니 빨갛고 둥그런 화상 물집이 보였어요. 깜짝 놀랐죠. 마침 그곳을 다카나시 선생님이 지나가서 선생님과 둘이 사유리를 양호실에 데려갔어요.양호 선생님이 안 계셔서 둘이서 화상 입은 사유리의 팔을 냉찜질해줬어요.”

아이카와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지사코가 대답했다.

“다카나시 선생님 말로는 담뱃불로 지진 자국 같다고.”
“어.”

목소리가 날숨처럼 나왔다. 이마와 손바닥까지 불쾌한 땀이 찼다. “그래. 그 아이의 사체에도 그런 흉터가 많이 있었던 것 같더구나.”

사유리의 엄마가 딸의 상처를 반 아이들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그것은 아이들이 한 짓이 아니었다.

“사유리는 부정했어요. 조심성이 없어서 전날 불장난하다 다친 거라고요. ……우리가 확인한 건 그 상처 하나뿐이었죠. 그것 말고 다른 상처는 발견하지 못했어요.”

표정은 없었지만 지사코의 목소리는 점점 차갑고 건조해졌다. 눈을 크게 한 번 깜빡거렸다.

“그래서 다카나시 선생님과 상의했죠. 선생님 얘기로 그 담뱃불 자국은 생긴 지 얼마 안 된 것 같고, 어쩌면 집이 아니라 학교에서 누군가한테 당한 것 같다고 했어요.”

2층 복도의 창은 지금도 한낮의 빛을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1층 복도를 걷던 때가 훨씬 밝게 느껴졌다.

“왜 나한테 알려주지 않았어?”

자신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지르자 지사코가 눈을 치켜떴다.

“……죄송해요. 하지만 착각했을 가능성도 있고, 무엇보다 사유리가 싫어했어요. 정말 아무 일도 아니라고 말이에요.”

아이카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저나 다카나시 선생님은 아이카와 선배 말대로 위기의식이 부족했나 봐요. 억지로 얘기를 끌어내지 말고 자연스럽게 말해줄 때까지 기다리자고 했죠. 그 일이 있고 나서 교생실습이 끝날 때까지 셋이서 자주 얘기를 나눴어요. 저랑 다카나시 선생님은 그때 사이가 좋아졌고요.”

등줄기에 차고 오싹한 것이 흘러내렸다. 지사코가 슬픈 표정을 지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

“선배, 혹시 그 얘기 들었어요? 사유리의 몸에 있던 멍은 단순히 맨손으로 맞은 게 아니라 긴 막대기 같은 거에 찔려서 생긴 게 많았대요. 마치…….”

선고라도 하듯 의연한 말투로 지사코가 말한다.

“수업에서 사용하는 지휘봉처럼 가늘고 긴 막대기요.”

몸이 굳어 미동도 못하고, 목에서는 아무런 말이 나오지 않았다. 금속 막대기를 쥔 손바닥이 불쾌한 땀으로 축축하게 젖 어버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렇게 말하며 웃어넘겼다.

“그때 네가 본 담뱃불 자국은 누구한테 얘기했니? 예를 들면 경찰이나.”

겨우 목소리가 나왔다. 지사코가 입을 다물었고, 지루한 침묵 끝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니요. 일은 이미 벌어졌고, 이제 와서 말한들 의미가 없잖아요. 얘기하려고 했다면 가장 먼저 선배한테 했겠죠. 실습 할 때 신세도 많이 졌고, 무엇보다 사유리의 담임이고. ……사유리 역시 선배를 많이 따랐고.”

그러고 보면.
지사코가 말을 이었다.

“교무실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누구죠?”

목에서 숨이 꿀꺽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지사코를 봤다.

“그렇게 많지는 않은 것 같아요. 남자 선생님 중에 다카나시 선생님, 교장 선생님, 교감 선생님은 피우지 않잖아요. 그래서 아이카와 선배랑 다른 몇몇 선생님들이 불편하다는 얘기를 자주 했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아무렇지도 않게 맞장구를 치려고 노력하는 아이카와 앞에서 지사코가 팔짱을 풀었다. “그럼 가볼까요?”라며 아이카와를 재촉했다.

“이제 음악실로 잃어버린 물건을 찾으러 가도 되겠죠?”

아이카와의 옆을 지나쳐 3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올려다보더니 다시 “그런데 이상해요.”라며 뒤를 돌았다.

“사유리는 정말이지 혼자서 열심히 청소했어요. 안 그러면 혼난다면서.”
“어?”

허를 찔린 것처럼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지사코가 무덤덤한 말투로 말한다.

“2층에서 3층에 걸친 이 계단을……. 그때 약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혼나다니 대체 누구한테 혼난다는 건지.”
“응?”
“혼난다는 말은 애들과의 관계에서는 나올 수 없는 단어잖아요.”

입을 오므리며 지사코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선배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짓을 할 리는 없고, 정말 이상하단 말이에요.”

자, 가시죠. 지사코가 앞장서서 계단을 올랐다. 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천천히 한 계단 한 계단 앞으로 나아갔다.

“선배.”

고개를 들었다.

“사유리는 정말로 엄마를 좋아했답니다. 물론 따뜻한 보살핌을 받지 못했고, 이웃들 말처럼 몹쓸 엄마였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언젠가 청소를 다 마치고 집에 돌아갈 때 사유리 엄마가 사유리를 데리러 학교 앞에 온 적이 있었어요.”

그녀는 뒷모습만 보인 채 계속 말을 이었다.

“둘이 손을 잡고 즐겁게 집에 갔어요. 사유리 엄마랑 저는 웃는 얼굴로 인사했죠. 지금 그 엄마가 괴로운 건 혐의 때문만은 아니라고 봐요. 사실은 딸을 잃은 비통함으로 몇 배나 더 괴로울 거예요. 그걸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아파서.”

……선배.
지사코가 다시 말했다.

“그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지사코가 아이카와에게 눈을 맞추면서 조용히 미소 짓는다.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어요.”

(계속)
  1. 국수땡겨아힝

    남자샘이 범인인가..
  2. DAN

    와....정말 지휘봉같은거에 찔린 상처라는말 보자마자 소름이 쫙...진짜 상상도 못했는데..
  3. 아....정말 재밌네요

    수준급으로 잘 짜인 괴담에 흡입력도 훌륭하군요
    내일 이야기 기다리겠습니다
  4. 설...마!!

    선배선생님이 범인?!! 잼나여